닷컴 버블(Dot-com bubble) = IT버블
세계 여러 국가에서 1995년과 2000년 사이에 발생한 광적인 투기, 투매 현상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스닥 종합주가지수는 2000년 3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943일간
고점 대비 78% 정도 하락하며 나스닥 역사상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하게 되었다.
닷컴 버블(Dot-com bubble)은 미국식 표현이고 한국에서는 IT버블이라는 단어로 많이 표현한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벤처기업이 각광받으면서 주식시장 위주로 진행되었다.
다신 꺼지지 않을 것 같이 활황기를 상징하던 말이기도 했으나 버블이 꺼지면서 큰 하락이 나오게 됐다.
특히 후유증이 심했던 국가들은 미국, 한국, 독일 국가들이었다.
그나마 미국 나스닥과 한국 코스닥은 어떻게든 소생했지만 독일의 노이어 마르크트(Neuer Markt)는
2003년에 시장과 지수 자체가 없어지고 남아있던 기업들도 기존 주식시장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폐지되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벤처기업을 위한 주식시장인 신시장(New Market)이 따로 있었다.
이 신시장에 유동성 자금이 몰려들면서 엄청난 버블이 생겼지만 결국 내려갈 주식은 내려갔다.
미국의 IT버블(Dot-com Bubble)
미국에서 첨단 주로 인터넷/통신 관련 주가가 각광받으면서 시작됐다.
갓 태동기를 넘어선 인터넷 산업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초유의 관심사였다.
인터넷 산업이 기존 산업을 뛰어넘어서 전부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곧이어 시작된
사업체들은 막대한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다.
대표적으로 코즈모 닷컴, 부 닷컴, 팻츠 닷컴 등 수많은 돈(몇백만 달러)을 모으게 되었다.
각 회사의 대표이사들은 투자자들에게 IT 산업의 대세로 인한 어마어마한 수입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이상을 따라잡지 못하였고, 아직까지 1999년의 인터넷 망은 56K 모뎀이나
케이블 위주여서 인터넷 속도가 매우 느렸다.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와 웹이니깐 무언가 더 좋겠지라고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너무나도 느린 서비스와 각종 문제들은 웹 서비스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키우게 됐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나스닥 종합지수는 400% 상승했지만 이후 버블이 꺼지면서 2001년에는
시장이 붕괴되었고, 그로 인해 투자자들은 무려 5조 달러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닷컴기업(Dot-com company)들도 줄줄이 쓰러졌고 웹 밴(Webvan), 빈즈 닷컴(Beenz.com)이 대표적이다.
2002년 10월에는 역대 최고치에서 78% 하락했고, Cisco와 퀄컴은 주가가 86% 하락했다.
지금 IT 대기업인 아마존은 주가가 2년 동안 95% 하락했었다. 이런 상황에 2000년 말기에는 결국 대부분의
닷컴기업들이 스스로 파산이나 도산의 길을 선택했다.
미국은 현재 애플, 아마존닷컴 등 IT버블 시기에 살아남은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해 나스닥 종합지수 신기록을 연일 경신하는 등 후유증을 거의 극복한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IT버블(Dot-com Bubble)
세계적으로 닷컴 버블 현상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정부에서
코스닥 시장과 중소기업 위주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IT버블이 불타올랐다.
IT산업이 신경제, 신산업으로 각광받으면서 펀드에 애국 마케팅 자금들까지 겹쳐서 급격한 테마주 쏠림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코스닥 시장은 '주가 조작의 은상'이라는 악평과 '스타 CEO, 기업의 신살'이라는 호평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1999년 당시 코스닥 시장은 계속된 데이트레이딩이나 주가조작 등으로 막장 증시의 진수를 보여주었고,
당시 드림라인이나 골드뱅크의 PER은 9999배라는 희대의 전설을 남겼다.
이후 신풍제약이 PRE 4000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이때와 비교하면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다.
코스닥은 그나마 다행이라 시가의 실체를 알 수 없어 오직 1:1 거래로만 해야 했던 장외주식의 버블은
더욱 심각했다. 코스닥에 상장도 안된 주식이 액면가의 200배를 찍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다.
그러나 버블 붕괴 이후 당시 테마주들은 당연히 대부분 상장폐지가 되었고, 2015년 기준 한국 정보통신,
카카오, 인터파크 홀딩스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한글과 컴퓨터도 경영권 분쟁(2차 한컴 사태)등으로 사업이 침체를 겪으며 예전만 한 기세는 못 냈다.
외환위기 당시의 주가 최저점과 IT버블 당시의 최고점을 비교해보면 코스피는 288P→1059P(2000년 1월),
코스닥은 60P→281P(2000년 3월)로 올랐었다.
그러나 2000년 마지막 날에는 코스피가 504P, 코스닥은 52P로 마감했다.
이후 코스닥은 100P(현재의 1000P)를 다시 넘어가기까지 21년이나 걸렸고,
코스피는 2005년에야 1000P를 돌파했다.
닷컴 버블 당시의 국내 코스닥 주가지수는 아직까지도 회복을 못하고 있다.
2000년 당시의 코스닥 지수의 최고점은 2000년 3월 10일의 2925였다.
참고로 버블 당시 코스닥 기준지수는 현재의 지수에 10배를 곱해야 같은 치수다.
버블 붕괴 후 지수가 30~40 수준이다 보니 제대로 써먹으려면 소수점 단위가 너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2004년에 기본 지수 자체의 배율을 강제로 10배 올려서 지수를 보정했다.
따라서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2925를 달성해야 버블 당시의 주가 지수를 회복하는 것이다.
당시 한국 주식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끼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IT버블이 꺼지는 걸 막으려고 벤처기업가들이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하는 등 부패상이 드러나
벤처기업에 안 좋은 시선이 늘어나게 됐다.
그 결과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벤처, 중소기업 육성책이 상당수 취소되고 다시 대기업 보호정책으로
회귀하는 듯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미국과 비슷하게 이때 살아남은 네이버, 카카오(다음), 넥슨 등 벤처기업들은 지금 한국의 신산업 분야를 이끄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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